[마약일기] 아버지가 우셨다 … "아들, 네게 그렇게 대하는 한겨레 당장 그만 둬라."
오늘 전해드리는 마약일기는 아프고, 슬픕니다. 가슴에 몽우리가 차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1년전의 제 감정을 전하는 건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공개합니다. 제가 겪은 모든 일들이 우리 사회 중독자들의 회복정책을 위한 공공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절대 울지 마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 지금 이렇게 다시 걷고 뛰고 있잖아요. 저 잘 이겨낼겁니다.
#2018년 5월18일 (금) 마약일기
인권단체의 대표를 찾아갔다. 한겨레에 ‘즉시해고’를 중단하라는 탄원서에 연서명 해줄 수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평소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그였다. ‘이 사람은 이번에도 조건없이 날 도와줄거야.’ 그를 믿었다. ‘한겨레의 사외이사이기도 하니까, 분명 날 도와줄거야.’
그의 표정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늘 내게 먼저 농을 건네며 웃던 그의 표정이 아니었다. 벌써 내 기대 따위가 틀려먹은 것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지만 내가 왜 찾아왔는지 뻔히 아는 그에게 ‘그냥 돌아가겠다’고 말할 핑계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정면 돌파해보자.
“회사에 탄원서를 내려고 합니다. 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그는 딱 잘라 거절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다 마약을 하진 않아요.” 그는 내가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인권단체 대표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지만 맞는 말이다. 우울증을 앓는다고 다 마약을 하지 않는다. 뭐라 반박을 못하겠다. 그냥 나는 우울증을 앓았고, 그러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됐고, 위로 받던 와중에 그가 중독자임을 알게 됐고, 그를 떠나지 못해 함께 중독되고 말았다. 중독치료는 커녕 함께 중독자가 되어가는 것을 인지했을 때 이미 때는 늦었다. 마약은 이미 내 몸과 마음의 지배자였다. 우울증이 원인일까, 내 나약한 의지가 원인일까, 아니면 마약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한 것이 원인일까, 중독자 친구를 매몰차게 걷어차지 못한 내 심성이 원인일까. 아니면 원래 나는 인간 쓰레기였는데 그걸 몰랐던게 원인일까. 나도 내가 마약을 한 이유를 한 마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다 마약을 하진 않는다’는 그 말에 뭐라 반박을 못하겠다.
대표는 내게 “왜 언론에 마약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아니, 추궁했다. 아니, 혼냈다. “검사 결과가 정확히 나오기 전에 모든 것을 다 밝히지 않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는 내 말은 그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 듯 했다. 그는 나의 그런 태도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괜찮다. 어차피 이런 비난은 감수했던 거다. 어찌 됐든 내가 마약을 한게 확정되기 전까지는 회사는 자세한 것을 몰랐던 상태로 만들어주는게 내가 한겨레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였다. 거짓말쟁이를 자처한 것은 내 선택이었으니 누구를 탓하랴.
더 이야기할 게 없어지는 듯 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이 인권단체는 내게 더 이상 따뜻한 공간이 아니다.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데 유독 이 단체의 건물은 공기가 차갑다. 그나마 인권단체이니까 냉랭한 공기만 쐬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내게 돌을 던질 것이다. 살갗이 벗겨지고 뼈가 튀어나올 만큼 고통을 쐴 것이다.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견뎌야 한다. 그래도 죽지 말자. 죽을 죄는 아니라잖나. 살아내기로 결심하지 않았나. 재현아, 버티자.
아버지가 결국 내 소식을 알았나보다.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축축했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우신다. 아버지가 우신다. 내가 아버지를 울린 거다. 살면서 아버지 우시는 목소리를 듣게 되다니. 나 하나만 잘되길 바라보고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오신 우리 아버지를 내가, 울렸다.
“재현아. 너 그런 회사 다닐 필요 없다. 너가 십년 넘게 잠도 제대로 못자고 주말도 없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그냥 때려치워라. 어떻게 너한테 그렇게 할 수가 있냐. 당장 그만 둬. 우리 세식구 설마 밥 굶기야 하겠냐.”
아버지는 내게 왜 마약을 했냐고 묻지 않으셨다. 그냥 딱 저 얘기만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아니, 내가 아버지 우시는 목소리를 견딜 수 없어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는게 아니라, 나와 함께 화를 내고 계셨다. 고마운 우리 아버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내 편이 되어주시는 우리 부모님. 내가이런 부모님께 어떤 죄를 저지른 것인가. 이 빚을 다 어찌 갚을 것인가.
전화가 쏟아진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노동단체의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겨레 정말 역겹습니다.” 그는 나보다 더 분개했다. 나는 어떤 감정으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울먹이시는 아버지와 한겨레를 역겨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역겨워 하는 한겨레 사람들. 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한겨레의 지금 행동도 당연히 이해가 된다.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만 괴로웠으면 좋겠는데, 회사 동료들과 가족들 모두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준게 너무나 슬프다. 내 정보를 퍼뜨린 경찰을 찾아내서 복수하고 싶다. 너희들에겐 한낯 가십거리이겠지만 당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죽고 싶을만큼 큰 고통이라고. 이 ㅅㅂㄴㄷ아!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하늘이 계속 흐리다. 잔잔한 비가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차로 상도터널을 지나갈 때쯤 민주노총 법률원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아준 한 변호사가 상담해주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사실 판단이 잘 안됩니다. 일단 형사 절차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해고부터 대중에게 공표한 건 잘못한 것 같습니다. 요즘 회사들이 명예훼손이라는 조항을, 불편한 노동자들 손쉽게 해고하는 수단으로 회사가 악용하는 관행이 있는데, 한겨레가 그 조항을 활용하고 있는 듯 하네요.”
나는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 그러니 이런 취급을 당해도 되는 걸까. 내가 마약한 것 외에 대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게 뭐가 있다고. 음주운전을 한 것도 아니잖나. 이놈의 회사는 왜 내 개인 정보를 시중에 퍼뜨린 경찰에 항의할 생각은 안하는 거지? 그냥 나만 죽으면 되는 거야? 그래, 그럼 그냥 죽여라. 내가 떠나겠다. 우리 아버지가 그만 두라고 하시는데 뭐 눈치 볼게 있나? 회사 때려 치우자. 더 이상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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