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6권(14)

제3항 춘천 서북방의 전황
단기 4284년 4월 24일 춘천(春川) 서북방으로부터 계속 공격을 가해 오던 적은 제6사단 정면에 가일층의 압력을 가해 오기 시작했다. 이에 아 공군은 사창리 동북방에서 수 미상의 적을 발견하고 공격을 감행하여 수개 분대 이상과 막사 등을 연소시켰으며 계속하여 사창리 서남방에 위치한 562고지 능선을 따라 남하하는 적 약 1개 중대 병력과 사창리 남방에서 남하 중인 2개 소대, 장암 동남방에서의 수 미상의 중공군 기병과 적 1개 대대 그리고 장암 동방에서의 적 2개 대대를 목격하고 각각 공중 공격과 포격으로서 적 반격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또한 사단은 적 약 1,000명의 병력이 사창리 서북방에서 남하 중이라는 수색대의 보고를 득했으며,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는 부대를 재편하는 동안에도 적은 계속 남침을 하고 있었다.
제7연대는 평강 북방 부근에서 수 미상의 적과 교전하였으며, 아 공군은 장암리 동북방에서 적 약 200~400명이 남하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공중 공격을 감행하여 약 100명 정도의 적병을 살상시켰으며, 김화 남방 고지를 따라서 남하하는 적 약 800~1,200명에 대하여도 공격을 감행하여 약 400명을 살상시켰다.
제7연대는 캔자스 방어선의 확보에 실패했으며 (CT6204~6604)를 연하는 선을 점령한 적 약 1개 연대의 계속적인 압력에 의하여 부득이 철수를 계속했으며, 부대는 분산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CS5782~6283) 지점에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 수습과 진지 강화에 임하였다.
제2연대는 (CT6911~7311) 부근 진지로부터 적 약 500명의 압력으로 부득이 철수를 개시하여 신진지를 구성했으며, 제7연대는 집결지 (CT7503)에서 대기 중에 있다가 사태가 불리해지자 제2연대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 내에서 남하하는 적과 교전을 전개하고 있었으나, 수 미상의 적이 아 연대 후방으로 침투했음을 알고 계속 철수하여 (CS6255~6687) 부근의 진지를 확보하고 부대 정리와 진지를 강화하고 있었다.
동 24일 12:00까지 사단이 수습한 인원을 볼 것 같으면 제2연대는 보고 없고, 제19연대는 700명 정도이고, 제7연대는 1,700명, 공병대대가 200명, 수색중대가 150명, 도합 2,75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