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29 파시즘에 진입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민족주의 이념의 의미와 필요성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이며, 이에 대해 대처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위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미리 대처하고 준비하면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초보적 단계의 분석과 평가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지만 집단으로서 인간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국가단위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은 생존과 번영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먼저 한국의 상황을 간략하게 진단해보자. 한국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앞으로 가라앉을 일만 남아 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위기의 상황에 진입하고 있다. 그 중에서 정치는 가장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퇴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퇴행의 주체는 정치적 주도세력의 책임이다. 한국정치를 주도해온 세력은 노무현 등장이후의 소위 386이다. 지금은 이제 나이가 들어 686이라고 한다. 1945년 해방이후 한국에서 그 어떤 정치세력도 30년 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 정치가 맞고 있는 위기적 상황에 대한 책임의 8할은 소위 686에게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주도세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한국의 발전과 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세력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가장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며 외세의존적인 경향의 정치세력으로 변해갔다. 노무현 이후 소위 보수정권인 이명박, 윤석열 정권은 보수를 넘어 수구적이며 매판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윤석열 정권에서 한국 소위 보수진영의 매판적 성격은 보수의 본래적 정의 그 자체를 훼손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박근혜는 탄핵을 당했지만, 미국 일변도의 대외정책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하려시도한 노력은 새로운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박근혜의 자주적 대외정책과 윤석열의 매판적 대외정책은 극과 극이라고 할 것이다. 박근혜가 말년에 갑자기 한일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고 사드를 설치하고 개성공단을 폐쇄했던 것은, 탄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이재명 정권은 대외정책과 국내정책 모두 진보적인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문재인 정권도 진보적인 방향이 아니라 정반대로 나갔다. 민족문제 해결에 중대한 계기를 만들 수 있었으나 이를 무산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악화시켰다.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은 문재인 정권에 있다. 차라리 가만 있기라도 했으면 나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외세의존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한 것처럼, 이재명 정권도 일방적인 외세 의존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정권은 문재인 정권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극우세력과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가 극우세력과 비슷한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자본친화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재명 정권의 자본친화적인 정책은 국내 자본의 이익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현재의 이재명 정권은 과거 그 어떤 정권보다 자본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재명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국은 점점 경제적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가 활황이라고 하지만 이런 활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미 중국이 무섭게 따라오고 있으며, 미국도 본토에서 반도체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고 하고 있다. 한국은 샌드위치에 끼어 있다. 주식가격의 상승과 코스피의 상승은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적 문제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주식시장이 뜨거운 것과 정반대로 한국민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으며, 실물경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두가지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야누스와 같다. 경제상황이 좋으면 자유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 파시즘적 경향을 보인다. 1929년 대공황 당시 미국은 파시즘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그 저변에 파시즘적 경향이 상당히 강력하게 존재했다. 미국이 그런 파시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루즈벨트의 수정자본주의의 도입이었다고 할 것이다. 수정자본주의란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접목한 것이다. 사회주의적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했던 독일은 파시즘으로 돌입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미국과 유럽은 경제적인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정권이후 드러나고 있는 파시즘적 현상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지 못하는 미국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새롭게 도약하려면 맘다니와 같은 도시 사회주의적 정책이 대폭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뉴욕시장으로 맘다니가 선출된 것은 미국의 주류세력, 즉 금융자본이 이런 문제와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이런 길로 가지 못한다면 파시즘적 경향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현재 트럼프의 미국은 사실상 히틀러의 독일에 필적할 정도의 파시즘적 경향을 띠고 있다. 인종주의와 군사주의는 파시즘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다. 미국이 파시즘적 경향으로 진입한 가장 큰 이유는 대중의 삶이 팍팍해지고 경제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미국의 금융자본은 자신의 부를 재분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기적으로 미국보다는 좀 더 뒤지지만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적 상황이 계속되면 파시즘적 경향으로의 진입이 우려된다. 한국에서는 파시즘을 향한 여건은 모두 조성되어 있다. 자신들은 부정하겠지만, 민주당의 소위 개딸이나 국민의힘의 태극기 부대는 파시즘의 가장 강력한 자양분이라고 하겠다. 이들은 한국적 파시즘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미국과 달리 파시즘을 견인해갈 정치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재명이 지금 권력을 잡지 않고 있었다면 가장 강력한 파시즘적 정치지도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재명은 얼마후 드러나게될 한국경제 약화 및 붕괴의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지도자가 될 정치인이 눈에 띠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미국과 다른 경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파시즘적 경로로 진입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말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는 신자유주의를 말기 자본주의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다시 새롭게 만들어갈 그 어떤 요인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경로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하게 상실했다. 미국이 다시 1930년대와 같은 케인즈 주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지금은 케인즈주의 보다 더 강력한 방향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맘다디와 같은 도시 사회주의가 미국의 일반적 정치원리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파시즘적 배경은 갖추어져 있지만 이를 견인할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 그런 점은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국이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의 수정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다시 사회주의적 정책을 도입해서 케인즈주의적인 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박정희식 국가발전 전략을 추진할 수 있을까? 그것 모두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시대적 상황적 여건이 너무 달라졌다.
필자는 여기에서 민족주의적 공동체의 이념을 다시 한번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말기자본주의적 상황은 역사발전 경로에서 서구적 경로가 더 이상 유용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구적 역사발전 경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고 그것을 민족주의적 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민족주의라고 해서 지금의 상황을 변혁시킬 수 있는 이념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민족주의에 대한 성격규정을 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제정치적 관계에서는 자주를, 국내정치적 관계에서는 공생과 공영을, 그리고 사회적 개인적 차원에서는 구속이 아닌 상호부조와 해방적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 정신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대동사회가 아마도 가장 가까운 개념일 것 같은데 그것도 경제적 측면에만 너무 집중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새로운 이념은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은 새로운 정치이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이와 계층이 아니라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동지적 정치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익의 배분은 이념의 하위에 존재하는 층위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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