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10 이란전쟁 71일차, 해양세력에서 대륙세력으로의 전이과정과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과 이란간 협상은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지금과 같은 교착상태를 하루라도 일찍 타개하고 싶지만, 이란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수없이 많이 언급했지만, 미국이 이란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압박수단은 없다. 군사적인 충돌에서 미국은 이란에게 명확하게 패배했다. 미국이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이란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필자가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되지 않아, 미국의 핵무기 사용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그런이유다. 미국은 절실하다. 이번에 이란에게 패배하고 체면도 상실하면 그 이후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는 말하지 않다도 충분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치적 사건과 사태가 어떤 역사적 지정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최근의 사건이 해양세력에서 대륙세력으로 역사적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주도권의 전이과정에서 해양세력이 주도했던 영미적 자본주의가 효용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대륙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면 어떤 세계가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중간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전쟁은 각각 별개의 사태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각각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하면 현재 전개되고 있는 지정학적 대격변과 역사진행경로의 대전환이란 작금의 상황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필자는 현재의 상황이 서구중심의 자본주의, 그것도 영미적 자본주의 질서와 체제가 그 효용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15세기 후반 신항로 개척 당시 부터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자본주의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그 중에서도 베네치아와 피렌체는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는 자본주의가 전후기로 나뉘어져 왔는데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전기 자본주의 즉 이탈리아 방식의 자본주의가 영미적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가 유태인의 발명품이라면, 과거 이탈리아 방식의 자본주의는 이탈리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전쟁과 격변은 그동안 작동해왔던 영미자본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 영미식 자본주의가 효용을 상실한 것은 금융자본의 끝모를 탐욕때문이기도 하지만, 영미식 자본주의 자체가 지배와 피지배라는 방식의 정치 군사적 압제와 뗄수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영미식 자본주의의 핵심은 군사력과 정치적 통제를 통한 경제적 이익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이탈리아의 자본주의는 교역을 통한 이익의 추구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베네치아의 경우 식민지를 건설하고 군사적 팽창도 하긴해지만, 그 정도와 성격에서 볼 때 현재의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해양세력의 주도권 상실은 영미식 자본주의가 수명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미식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해양이었다. 서구의 신항로 개척은 결과적으로 해양을 통한 대륙의 지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겠다. 지리적으로 해양은 가장 효과적인 교역의 무대였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이란의 미국에 대한 저항과 투쟁은 기존에 존재해오던 해양세력에 대한 도전이자, 대륙의 자체적인 생존과 발전의 모색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의 발전과 러시아의 회복은 영미적 해양질서에 대항한 대륙적 삶의 방식이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역사는 변화한다. 기존의 질서가 더 이상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나타나는 법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모두 사회주의적 전통위에 서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적 지배체제가 공고화되더라도 기존의 사회주의가 다시 등장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의 경험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민족주의의 부활이란 점이다. 동양의 민족주의와 서양의 민족주의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러시아는 국가의 성격이란 점에서 서구보다 오히려 동양적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공통적인 국가적 삶의 기반에 바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다르지 않다.
대륙적 삶의 방식의 특징은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이다. 대륙에서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당연히 공동체적 가치가 최우선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도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삶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대륙지역에서 사회주의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는가 한다. 영미적 자본주의에서 대륙적 공동체의 가치라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가장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자 방해물이었던 것 같다. 영미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집단서방이 소위 PC 주의라는 것을 통해 대륙적 삶의 가치, 종교적 가치를 모두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와 목적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푸틴이 러시아에서 동성주의자를 배척하고 처벌한 것은 영미식 자본주의 이익 추구에 대한 대항과 저항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이념도 영미적 자본주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도구라고 보고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번 언급한바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영미적 제국주의의 수단으로 작동했다는 것은 인식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한국은 최근 들어 급격하게 과거의 삶의 방식을 상실했다. 아마도 그런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IMF 사태가 아닌가 한다. 그 이전만 해도 한국은 기존의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 상당부분 작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우리의 모든 가치는 오로지 금전적 이익이 되어 버렸다. 결국 약자는 더욱 약해지고 강자는 더욱 강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소위 민주화세대는 이런 변화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세대가 아닌가 한다. 한국 사회가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상실한 작금의 상황에서 소위 민주화세대가 가장 자본주의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것은 이런 서사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울 듯 하다.
한국 사회는 해양적 가치와 질서에 편입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제 세상의 작동원리가 바뀌려고 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