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1 예멘의 새로운 전쟁, 서아시아 질서의 재편, 정태현
- 이 글에서 '예멘'은 사나를 수도로 하며 안사르 알라(후티)가 통치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아덴을 수도로 하는 정부는 '예멘 국제정부'로 표기한다.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긴장이 다시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를 단순히 홍해 항로의 안전이나 이란과 미국의 대립이 낳은 부수적 현상으로만 해석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벌어지는 충돌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서아시아의 정치·안보 질서를 결정할 새로운 힘의 균형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2022년 4월 유엔 중재 아래 체결된 휴전 이후 양측은 완전한 평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약 4년 동안 대규모 충돌을 자제하며 불안정한 평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2026년 7월 13일 사우디가 사나 국제공항을 공습했고, 다음 날 예멘이 사우디 남부 아브하 공항을 미사일로 타격하면서 이 균형은 사실상 무너졌다. 이번 충돌은 일시적 휴전 파기가 아니라 지난 10여 년 동안 누적되어 온 정치·군사적 갈등이 다시 폭발한 결과다.
❙ 안사르 알라의 등장
예멘은 아라비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국가로, 인구는 약 3,400만 명, 국토 면적은 약 52만 8천㎢이다. 1990년 북예멘과 남예멘이 통일되면서 하나의 국가가 되었지만, 지역 간 경제 격차와 부족 중심의 정치 구조는 끝내 해소되지 못했다. 중앙정부의 통치력은 약했고, 권력은 특정 세력에 집중되었으며, 국가 운영은 오랫동안 불안정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폭발시켰다. 33년 동안 집권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퇴진했고, 과도정부는 국민대화회의를 통해 새로운 연방제 국가를 설계하려 했다. 그러나 권력 재편 과정은 각 지역과 부족, 종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했고, 오히려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안사르 알라, 흔히 '후티'라고 알려진 세력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이들은 예멘 북부 사다 주를 기반으로 하는 자이디파 시아 무슬림 공동체에서 출발했다. 자이디파는 수백 년 동안 북예멘에서 이맘 체제를 유지하며 정치와 종교를 함께 이끌어 왔지만, 1962년 북예멘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중심에서 밀려났다.
1990년대 후세인 바드레딘 알후티가 시작한 이 운동은 처음에는 종교·사회 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2004년 정부군과의 무력 충돌 이후 군사조직으로 발전했고, 정부와의 전쟁을 반복하며 세력을 확대했다. 결국 2014년 9월 안사르 알라는 수도 사나를 장악했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실각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예멘 내전의 직접적인 출발점이었다.
❙ 2015년 사우디 주도의 군사 개입
2015년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의 합법 정부를 복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사 개입을 시작했다. UAE와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요르단, 모로코, 수단, 이집트 등 9개국이 참여한 연합군은 '결정적 폭풍 작전'을 개시했고, 이후 '희망 회복 작전'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공습을 이어 갔다. 사우디의 목표는 국경을 위협하는 안사르 알라를 제거하고, 친사우디 정부를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격은 예멘 사회를 근본적으로 붕괴시켰다.
유엔 집계에 따르면 2025년까지 전쟁과 봉쇄로 약 37만 7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가운데 약 60%가 폭격이 아니라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무너진 의료체계와 식량난은 전장을 넘어 일상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당시 예멘 인구의 약 80%인 2,70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했고, 2천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에 시달렸다.
공습은 군사시설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병원과 학교, 시장, 결혼식장, 장례식장 같은 민간 시설도 반복적으로 공격받았다. 2016년 10월 사나의 장례식장 공습에서는 약 140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어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불러왔다. 2018년 8월에는 북부에서 어린이들이 타고 있던 버스가 공습을 받아 26명의 어린이가 숨졌다. 전쟁은 군인보다 민간인에게 훨씬 더 큰 희생을 강요했다.
이 전쟁은 사우디 혼자 수행한 전쟁도 아니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무기 수입의 약 13%를 차지한 세계 2위의 무기 수입국이었다. 미국은 이 기간 사우디에 약 73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판매했고, 영국 역시 약 90억 파운드 규모의 수출을 승인했다. 결과적으로 예멘의 전쟁은 지역 분쟁인 동시에 세계 최대 무기 공급국들이 깊이 관여한 국제적 전쟁이었다. 무기 판매와 군사 지원은 전쟁을 끝내기보다 오히려 지속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 2022년 휴전과 4년간의 불안정한 평화
2022년 4월 2일 유엔 특사 한스 그룬드베르그의 중재 아래 사우디와 안사르 알라는 두 달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은 형식적으로는 같은 해 6월 종료됐지만, 양측 모두 전면전을 재개하지 않았고 이후 여러 차례 연장을 거치면서 사실상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졌다.
외교적 움직임도 이어졌다. 2022년 10월 사우디는 안사르 알라 대표단을 리야드로 초청해 직접 협상을 시작했고, 2023년 9월에는 오만의 중재 아래 평화 로드맵 초안이 마련됐다. 같은 해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예멘에서도 장기적 평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평화는 어디까지나 '전투의 중단'이었을 뿐, 갈등의 해결은 아니었다.
안사르 알라는 사나를 중심으로 행정부를 운영하며 사실상 국가 기능을 수행했고, 최고정치평의회 의장 마흐디 알마샤트가 국가원수 역할을 맡았다. 반면 서방이 인정한 이른바 ‘예멘 국제정부’는 남부의 일부 지역만 간신히 통제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의 통치 권력과 국제사회의 승인 대상이 서로 다른 기형적인 구조가 계속 유지된 것이다.
경제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우디와 UAE가 주도한 봉쇄는 계속됐고, 예멘은 연료와 식량, 의약품 부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쟁이 멈췄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총성이 잦아든 자리에는 봉쇄와 빈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갈등이 그대로 남았다. 결국 이 불안정한 균형은 언젠가 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 2025년 남부 예멘 공세와 UAE의 퇴장
2025년 말 예멘의 권력 지형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안사르 알라에 맞서던 UAE와 사우디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반안사르 알라 진영 내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2025년 12월 4일, UAE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남부이행위원회(STC)는 하드라마우트와 알마흐라 등 남부의 핵심 유전 지대를 장악했다. STC는 2017년 창설된 남부 분리주의 세력으로, 과거 남예멘의 독립 또는 광범위한 자치를 목표로 삼았다. UAE는 2015년 이후 이들을 후원하며 아덴과 남부 항만, 전략 거점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STC의 군사행동은 안사르 알라보다 오히려 사우디가 후원하는 예멘 국제정부의 기반을 흔들었다.
사우디는 이를 단순한 내부 갈등이 아니라 자국의 전략적 영향력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여겼다. 2026년 1월 2일 예멘 국제정부군은 사우디 공군의 지원 아래 STC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전세는 뒤집혔다. STC 지도자 아이더루스 알주바이디는 해외로 망명했고, UAE군은 예멘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STC 역시 공식적으로 해산됐으며, UAE가 후원하던 여러 무장세력은 대부분 사우디의 영향권 아래 편입됐다.
이는 예멘 내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는 반안사르 알라 진영을 사실상 단독으로 통제하는 위치에 올랐다. 2026년 2월 6일 출범한 35명 규모의 새 내각과 9천만 달러의 공무원 임금 지원, 5억 700만 달러 규모의 개발 자금 지원은 단순한 경제 원조가 아니었다. UAE가 남긴 정치적 공백을 메우고 예멘 국제정부를 사우디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조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역설적으로 사우디와 안사르 알라의 직접 대결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사우디는 이제 더 이상 UAE와 책임을 분담하지 않으며, 예멘 국제정부의 군사행동 역시 자연스레 리야드의 의지와 연결해 해석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 2026년 7월 휴전의 붕괴
4년 동안 유지되던 불안정한 평화는 2026년 7월 들어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계기는 7월 3일 이란 민간항공기가 사전 승인 절차 없이 사나 국제공항에 착륙하며 발생했다. 201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예멘은 이 항공기에 200명이 넘는 환자와 부상자, 장기간 발이 묶여 있던 민간인이 탑승해 있었다고 설명했다.
긴장은 곧 군사적 대치로 이어졌다. 7월 6일 예멘은 사우디의 전투기가 해당 민간기의 착륙을 저지하려 했으며, 예멘 방공망이 이를 막아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했다고 발표했다.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가 이 문제를 단지 민간 항공 문제가 아니라 군사·주권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7월 13일 발생했다. ‘예멘 국제정부’는 추가적인 이란 항공기의 운항을 차단하기 위해 사나 국제공항 활주로를 공습했다고 발표했다. 수년 만의 이뤄진 최대 규모의 공습이었다. 예멘은 이를 ‘예멘 국제정부’의 독자적 행동이 아니라 사우디의 직접적인 군사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7월 14일 사우디 남부의 아브하 공항을 미사일로 공격하며 즉각 보복했다. 2022년 이후 이어진 비공식 휴전은 사실상 종료됐다.
충돌은 곧 홍해로 확산됐다. 7월 23일 예멘은 홍해에서 사우디 유조선 인실리아호와 라일라호를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통신 역시 인실리아호 선미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제 원유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바브알만답 해협을 통과하는 하루 약 480만 배럴의 석유와 액화천연가스 수송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국제 유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예멘의 공격이 갖는 의미는 유조선 한 척의 피해에 있지 않았다. 안사르 알라는 자신들이 언제든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홍해와 바브알만답 해협은 수에즈 운하와 연결되는 세계 해상 물류의 핵심 통로다. 이 지역의 불안은 곧 국제 무역과 에너지 시장 전체의 불안이 된다.
❙ 예멘의 전략과 사우디의 구조적 취약성
이번 충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측의 전략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국경의 안정과 경제 개발, 그리고 '비전 2030'을 중심으로 한 투자 환경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면 예멘은 현재의 질서를 흔들어 협상 자체의 조건을 바꾸려 한다. 그저 군사적 승리를 노리는 것이 아니다. 사우디가 현상 유지를 선택하는 비용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게 전략의 핵심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양측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11년에 걸친 전쟁과 봉쇄를 거친 예멘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 기반과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된 상황이다. 추가 공습으로 잃을 수 있는 전략 자산 자체가 많지 않다. 반면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로 거대한 석유 시설과 항만, 공항, 금융 중심지, 외국인 투자 환경에 국가 경제를 의존하고 있다. 안사르 알라가 노리는 것은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다.
사우디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공체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이 공급한 패트리엇과 THAAD 체계는 중동에서도 가장 강력한 방어망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난 10년은 아무리 뛰어난 방공망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2019년 9월 14일 안사르 알라는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유전을 공격해 사우디 석유 생산량의 절반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당시 국제 유가는 하루 만에 15% 이상 급등했다. 2022년 3월에는 제다의 아람코 시설이 공격받았고, 2026년에는 아브하 공항까지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갔다. 반복되는 공격은 사우디의 방공망이 모든 위협을 차단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예멘이 무차별적인 확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도 바브알만답 해협을 전면 봉쇄하는 선택은 자제하고 있다. 홍해가 폐쇄될 경우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물론 인도 등도 '국제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새로운 다국적군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사르 알라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국제적 개입을 유도하지 않는 선에서 압박 수위를 조절하며 점진적으로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안사르 알라가 ‘예멘 국제정부’의 모든 군사행동을 사실상 사우디의 직접 개입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 사우디가 동맹 세력을 앞세워 군사행동을 하더라도 그 대가는 결국 사우디 본토가 치르게 만들겠다는 경고다. 안사르 알라는 리야드가 대리 세력을 활용하는 전략 자체의 효용을 낮추려 하고 있으며, 전쟁의 책임과 비용을 사우디에 직접 귀속시키려는 계산이다.
❙ 미국과 이란의 대립 속에서 달라진 예멘의 위치
2026년의 예멘을 이해하려면 내전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지금의 예멘은 사우디와 안사르 알라 사이의 분쟁을 넘어 미국과 이란의 전략 경쟁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2015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2015년 사우디가 군사 개입을 시작했을 당시 미국은 정보 지원과 무기 공급, 공중급유 등으로 연합군을 적극 지원했다. 당시 워싱턴의 목표는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6년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예멘이 아니라 이란 그 자체로 이동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과 군사기지를 겨냥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서아시아의 긴장은 예멘보다 이란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28일 예멘은 이스라엘 군사시설을 공격하며 이란과의 연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예멘 전선은 더 이상 독립적인 분쟁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대립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축이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1월 안사르 알라를 다시 외국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제재를 확대했다. 미국 재무부는 안사르 알라를 지원한 개인과 단체, 선박을 제재 명단에 추가하며 자금과 물자의 흐름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은 경제 제재에 집중됐을 뿐, 2015년과 같은 대규모 군사 개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국은 홍해에서 항행 보호 작전을 계속 수행했지만, 예멘 전쟁 자체에 깊숙이 다시 뛰어들지는 않았다.
이 변화는 미국의 의지보다 전략적 여건과 관련이 있다. 이란과 직접 대치하는 상황에서 예멘이라는 또 하나의 대규모 전선까지 감당하는 것은 정치적, 군사적 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미국은 홍해의 항행을 관리하려 하지만, 예멘 자체에 대한 개입에는 제한적이다.
게다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에도 이란의 지역 동맹 세력을 통한 영향력 유지 전략은 계속되고 있다. 안사르 알라는 그 전략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다. 이란은 오랫동안 미사일과 드론 기술, 정찰 체계 등을 지원해 왔고, 이러한 지원은 안사르 알라의 비대칭 전력을 크게 발전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이 속에서 안사르 알라는 자신을 일개 예멘의 무장세력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미국 중심 질서에 맞서는 지역 행위자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가자지대 학살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 선박과 홍해 항로 및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군사행동들은 그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하게 알렸다. 그 결과 안사르 알라는 아랍권을 비롯해 세계 여러곳에서 이전보다 높은 정치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 서아시아 질서에 미치는 영향
이번 충돌이 중요한 이유는 전투의 규모 때문이 아니다. 사나와 리야드의 대립은 서아시아에서 힘의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첫째, 이번 충돌은 중동에서 미국 중심 질서가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우디는 여전히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지만 과거처럼 미국이 직접 모든 지역 문제를 관리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직접 대립에 집중하고 있고, 사우디는 예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면 예멘은 이란과의 협력을 통해 독자적인 군사·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 서아시아 지역 강국들이 각자의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둘째, 비대칭 전력이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바꾸고 있다. 예멘은 경제력도, 산업 기반도, 정규군의 규모도 사우디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미사일과 드론, 순항미사일을 활용한 장거리 타격 능력은 훨씬 강한 국가에도 상당한 비용을 안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브카이크 유전과 아람코 시설, 아브하 공항, 홍해의 유조선 공격 모두 이러한 변화를 상징한다. 오늘날의 국력이란 단지 경제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상대의 취약한 지점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능력이 새로운 억지력으로 떠올랐다.
셋째, 이번 충돌은 에너지 안보와 세계 경제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보여준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이며, 바브알만답 해협은 하루 약 480만 배럴의 석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지나는 핵심 해상 통로다. 예멘에서 벌어진 국지적 충돌 하나가 국제 유가와 세계 물류를 흔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아시아의 분쟁은 더 이상 서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넷째, 국제법을 둘러싼 논란도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은 안사르 알라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강한 제재를 유지하는 반면, 이스라엘의 가자지대 학살이나 자신들의 이란 공습에는 합당한 대응이라며 합리화한다. 국제사회가 유사한 무력 사용을 서로 다른 기준으로 다룬다는 비판 역시 꾸준히 제기된다. 이러한 논란은 국제 규범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서아시아 국가들의 불신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섯째, 이번 전쟁은 허술한 평화협정만으로는 갈등을 끝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2022년 휴전 이후 유엔과 오만, 중국 등 여러 주체가 중재에 나섰지만, 사우디의 봉쇄와 예멘의 주권 요구라는 핵심 쟁점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총성이 멈추었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는 결국 또 다른 충돌의 형태로 돌아왔다. 이번 전쟁은 그 사실을 확인시켜 준 사례다.
❙ 사나와 리야드가 마주한 선택
예멘은 이미 국가 기반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여서 추가적인 피해를 감수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사우디는 세계적인 에너지 생산국이자 투자 중심 국가인 만큼 공항과 유전, 항만 등 핵심 시설이 공격받을 경우 경제적 충격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우디가 치러야 할 비용은 예멘보다 더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예멘은 시간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고자 한다. 지속적인 압박을 통해 리야드가 협상 비용보다 전쟁 비용이 더 크다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반대로 사우디는 우월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어떤 선택도 과거처럼 결정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대규모 공습은 국제적 부담을 키우고, 지상군 투입은 또 다른 장기 소모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전개는 크게 세 가지 가능성으로 압축된다.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양측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제한적 충돌을 이어가다가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만 등 역내 국가들의 중재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다. 마지막은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예멘 전선과 직접 연결되면서 분쟁이 서아시아 전체로 확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2026년 7월 25일 오만에서 양측 대표단이 다시 접촉했다는 보도는 외교적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협상이 일시적인 휴전에 그친다면 결과는 2022년 이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봉쇄와 주권을 둘러싼 근본적인 대립이 해소되지 않는 한 휴전은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충돌은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전쟁은 서아시아의 세력 균형, 국제 에너지 시장, 홍해 해상 교통, 그리고 국제질서의 작동 방식을 동시에 시험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질서는 누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느냐보다, 누가 더 오래 정치적, 경제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예멘의 전쟁은 과거를 반복하는 내전이 아니라 새로운 서아시아 질서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될 것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