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1 불안의 개념에 대해, 말기 자본주의의 불안과 절망steemCreated with Sketch.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무엇일까? 아마도 불안이 아닌가 한다.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우리 사회를 휩싸고 있는 불안은 다름 아닌 불안인 것 같다. 불안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연구는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간의 실존적 문제가 불안이었다. 그러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직면했던 그 당시의 불안과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은 그 성격이 매우 다른 것 같다.

실존주의 철학의 불안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극복의 대상이었다고 하겠다. 지금의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의 실존적 존재를 고양하는 대상이었던 셈이다. 프로이드와 같은 심리학자들은 불안을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는 듯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내가 그리고 내 주변의 우리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세계의 불안은 기존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이 심리학자들이 다루었던 불안과 그 정체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은 이를 극복함으로써 내 자신의 실존적 존재를 고양하기위한 과정과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은 나와 우리라는 존재가 모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엄혹한 현실인식의 결과인 것이다.

과거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느낀 불안과 현재 내가 그리고 우리가 느끼고 있는 불안의 근원과 정체는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를 극복의 대상이고 이를 통해 실존적 존재를 고양할 수 있다고 보았던 반면, 현재 내가 관찰하고 있는 불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은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보았던 불안은 결과적으로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급격한 자본주의화에 따른 인간의 필연적 심리상태가 불안이었으며, 이는 그동안 인간들이 살아왔던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느낀 심리상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들이 느낀 불안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내가 느끼는 불안은 그와는 매우 다르다.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은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지만, 더 이상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식적 사회는 존재하지만 본질적 사회인 공동체는 이미 그 생명을 다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본질은 자본주의 체제의 말기적 현상이다. 불안의 성격과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그 불안이 어떤 시대적 상황 어떤 사회경제적 상황에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서구의 철학자들이 보았던 불안과, 그 당시 식민지배에 살던 인간의 불안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극복의 대상이었을지모르나, 어떤 사람에게는 더 이상 극복하기 어려운 심연의 절망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불안의 본질은 더 이상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은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의 체제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는 사실상 그 효용과 생명을 다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안의 저변은 관계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자유의 댓가로 치뤄야 할 희생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애시당초 불안을 댓가로 치루어야할 정도의 무한한 자유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세상이 내던져졌다는 실존주의적 인식도 결국은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려, 인간에게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공동체를 빼앗아 버린것이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을 모두 각자도생의 길로 몰아가면서 불안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제국주의적 번영과정에서 불안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제국주의적 존재방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불안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절망적 상태로 그 의미가 변한 것이다.

불안은 결국 각 개인이 처한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말기 자본주의에서 불안이란 심연과 같은 절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