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화원 대구 비슬산-7 대견사(大見寺)
진달래화원 대구 비슬산-7 대견사(大見寺)
대견봉을 거쳐 대견사로 향했다. 비슬산에서 유가사와 더불어 가장 큰 사찰이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등산로를 따라 휴양림 쪽으로 하산했다. 대부분의 사찰은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는데, 대견사 역시 휴양림 사이를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시간이 촉박하면 이 버스를 이용하라던 산악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날머리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상당히 떨어진 곳에 식당이 하나 있었지만 거기까지 가기엔 무리였다. 대신 노점이 하나 있어 어묵과 막걸리 한 병을 사서 길거리에서 먹었다. 야전에서 이 이상의 것을 바라는 건 사치다. 술은 역시 마시는 시점이 중요하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 특히 등산 같은 격렬한 운동 후에 마시는 술은 그야말로 보약이다. 막걸리 한 병이면 충분하다.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네 시간을 버스로 이동해도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운동으로 흘리는 땀은 사우나에서 빼는 땀과는 다르다고 한다. 몸속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해 주는, 건강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땀이다.
대견사(大見寺)
대견사는 해발 약 1,000m 고지에 위치하여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이 22세에 승과에 합격한 후 첫 주지로 부임하여 약 22년 동안 머물며 수행했던 곳이다. 이곳에서의 영감이 훗날 《삼국유사》 집필의 토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견사는 대마도를 마주 보고 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견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꺾인다"는 설이 있었다. 이에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강제로 폐사당하는 아픔을 겪었으나,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사찰 주변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듯한 암괴류(Block Stream)가 장관을 이룬다. 이는 빙하기 시대의 지질 활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대견사지 삼층석탑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탑은 고려 시대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산 아래를 굽어보는 모습이 일품이다.
부처님 진신사리
복원 당시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적멸보궁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기암괴석
부처바위, 코끼리바위, 거북바위 등 자연이 빚은 독특한 형상의 바위들이 사찰 곳곳에 포진해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