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재미
가여운 것들 Poor Things. 2024. 요르고스 란티모스.
교수와 학생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자네 논문 말이야”
“마음에 드셨습니까?”
“비범해 보이려 애쓰는 평범한 두뇌의 발악 같더군”
학생은 교수를 무척 동경하는 것 같다. 그런 말에도 그저 감사하다고 한다. 그 교수와 나란히 걸으면서 말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기뻐 보인다.
이 장면에서 소셜미디어에 재치를 갈망하는(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짧은 글을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포스팅하며 남들에게 ‘비범해 보이려 애쓰는 평범한 두뇌’를 지닌 그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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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중 <송곳니(2009)>를 처음 보았다. 기괴하고 불편했지만 눈을 떼지 못했다. 재미있었다.(‘재미있다’는 말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그럴듯하고 멋지며 딱 들어맞는 현학적인 다른 표현을 쓰고 싶지만, 역시 ‘재미있다’가 영화를 칭찬하는 가장 좋은 말 같다.)
<가여운 것들>은 란티모스의 초기작 <송곳니>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제작비가 투여된 것 같았다. 저예산 느낌을 물씬 풍기는 <송곳니>와는 달리, 장면 하나하나에 등장하는 소품, 의상, 배경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티끌 하나라도 허투루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듯한 강박이 고스란히 담긴 정교한 연출이 시각적으로 무척 아름다웠다.
당연히 감상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둘 다 모두 불편한 영화지만, <송곳니>의 불편함이 더 자연스럽고, 더 기괴하고, 더 유니크하고, 더 ‘논리적’이었다. (‘논리적’이란 말이 좀 아이러니하지만) ‘납득’되는 불편함이 주는 재미가 더 컸다.
<가여운 것들>에서 성매매를 주인공의 ‘주체적 결정’처럼 연출한 시도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뭔가 어색하게 보였다. ‘불편함’은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중심 정서이자 ‘재미’ 일 텐데, ‘어색함’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가 뭔가 삐끗한 것 같은 그런 어색함이다. 음. 하지만 그것 역시 감독의 의도일 지도 모른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