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의 밤, 물을 주며 기적을 기다린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 20분이다.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밭에 도착하니 스프링클러가 한밤중의 정적 속에서 열심히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저녁 7시 반쯤 틀어놓고 왔으니 벌써 몇 시간째다. 밭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지대가 조금 낮은 곳에는 물이 아예 고여 있었다.
온다던 비가 오지 않으니 농사짓는 평생 처음으로 스프링클러까지 동원해가며 물을 대고 있다.
가뭄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타들어 가는 옥수수밭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로 가물기 전에 소나기라도 한 줄기 시원하게 내렸을 것이다.
어지간하면 때맞춰 비를 내려주시는 것이 하늘의 베풂이자 은혜였기에, 지금까지는 이렇게까지 물을 줘가며 밭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올해 가뭄은 정말이지 예상 밖이다.
스프링클러의 위치를 지금 옮겨놓았으니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와서 옮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아침 식사를 하고 와서 또 한 번, 점심때 다시 와서 또 한 번 옮기면 될 것이다.
몸은 고되겠지만 망설임 끝에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홀로 밭을 어슬렁거리는 기분도 제법 묘하고 운치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문득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다.
조용히 물을 끓여 한 잔 타서 마신다.
이 시간에 무슨 커피냐고 핀잔을 줄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밤에 마시는 커피와 수면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둔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는 축복받은 몸을 타고나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태껏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이 안 와서 고생해본 기억은 별로 없다.
물론 이런 것도 장담할 일은 아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수면 패턴이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문득 달력을 보니 내일은 목요일, 아침부터 오전 내내 수업이 꽉 찬 날이다.
날이 밝으면 밭도 돌봐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게 뻔하다.
내일 아침에 허둥대고 싶지 않아, 차라리 지금 포스팅이라도 미리 해두자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켰다.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6월이 가기 전에 꼭 끝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예보를 보면 분명 오늘—아니, 이제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다—오전과 오후에 비 소식이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야속하게도 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았다.
오늘 낮 예보에도 오전 비 소식이 떠 있지만, 아무래도 또 한바탕 허탕을 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강수확률 60%라는 숫자는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참 이상한 일이다.
비를 간절히 기다리지 않을 때는 확률이 60%만 되어도 기어코 비가 쏟아지더니, 온 마음으로 기다리는 지금은 매일 비 예보가 있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흔적조차 없는지 야속하다.
내가 너무 애타게 기다려서 수줍어 숨어버린 걸까.
낮에 보니 밭 한쪽에는 콩이 싹을 틔우고 예쁘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 어린 생명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만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스프링클러도 옮겨두었고 글도 마쳤으니 이제는 정말 자러 가야 할 시간이다.
메마른 땅을 적셔준 물줄기처럼, 내일은 대지를 적셔줄 진짜
비를 기대하며 하루를 감사히 마무리한다.
2026/06/18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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