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똑똑함’과 나의 대처는...

in #steem8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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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똑똑함’과 나의 대처는.../

살다 보면 유독 눈에 밟히는 부류가 있다.
돈 쓸 자리와 책임질 순간에 교묘하게 발을 빼며 그 자리에 타인을 밀어 넣는다.
겉으로는 기회를 양보하는 척 포장하지만 리스크는 전부 남의 몫이다.
일이 잘 풀리면 일말의 미안함이나 부끄럼 없이 공은 자기가 가져간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그들의 말과 태도다.
자신의 능력으로 남을 감쪽같이 속였다고 믿으며 오만하게 군다.
한편 스스로 대단히 영리하고 똑똑하다 여긴다.
그 모습을 보면 불쾌감을 넘어 역겨움이 치민다.

돈 몇 푼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고 감정과 에너지가 오염되는 기분이다.
가장 번민스러운 지점은 내 양심이다.
그 꼴을 보고도 그 상황에서 못 본 척 지나치지 못한다.
고민이 거기에 있다.

똑같이 영악해지자니 내 영혼이 거부한다.
대놓고 들이받자니 속 좁은 사람으로 몰린다.
결정적으로 관계의 판이 깨질까 두렵기도 하다.
결국 모르는 척 맞춰주다 보니 속만 시커멓게 탄다.
억울함과 모멸감에 솔직하게 말해 기분 더럽다.
인사나 체면 세워주기 위해 수차례 응해 줬더니 완전 호구로 아는 거 같다.
그래서 정말 그런 분위기에 말리지 않으려 나름 노력한다.

내가 바보라서 당해준 것도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인사성 대접으로
인간적 도리로 베푼 것이다.

그란데 빈번해지니 자신의 영악함이 대단한 줄 안다.
타인의 침묵과 배려로 연명할 뿐인데 그걸 모른다.
호의를 갈취해 쌓은 탑은 쉽게 무너진다.
신뢰라는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감정의 굴레를 벗어날 해결책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마음에 드는 그럴듯한 해결책이 있다.

1. ‘심리적 관객석’으로 물러앉기

그가 또 잔머리를 굴릴 때 같이 감정을 쓰지 마라.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석에 조용히 앉아라.
그의 삼류 연극을 방관하듯 바라보라.
‘또 시작이군, 참 애쓴다’ 하고 읊조려라.
내 감정과 그 자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귀한 마음을 쓰레기통에 내어주지 마라.

2. ‘선택적 무능함’ 연기하기

그런 자는 눈치 빠르고 책임감 있는 사람만 노린다.
그가 등을 떠밀 때 철저히 둔해져라.
무지한 사람이 되어 튕겨내야 한다.
“요새 정신이 없어 챙길 여력이 없다”고 하라.
“잘 몰라서 일을 망칠 것 같다”며 웃어라.
짐을 받지 않고 바닥에 떨어뜨리는 기술이다.

3. 기록과 공유라는 방패 들기

공을 독차지하는 자는 시각화된 증거를 무서워한다.
함께 하는 일은 사소해도 전부 기록하라.
문자, 이메일, 단체 대화방을 활용하라.
“이번엔 ○○님이 주도했고 전 보조했다”고 공표하라.
사실을 담담하게 남기면 제 발이 저리게 된다.
말싸움 없이 계산을 무력화하는 우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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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대처법이 훌륭한데
찾아 보시는 자세는 더 훌륭하십니다.

그런 사람.
참 싫어요.
Let Them.